삶이란?

지나고 보면 아름다울 수도 있는 슬픔의 그림자

솔뫼정원 2006. 2. 23. 17:29

                    [신사임당의 나비와 수박을 그린 민화]

 

[2003년 3월 20일]

 

가끔씩 가슴 아픈 내용의 드라마나
밀물같은 감동이 전해지는 이야기
그리고 어려운 우리의 이웃들을 돕기 위한
방송 프로그램 등을 볼 때
감정에 약한 나는 가끔씩 눈물을 글썽이곤 합니다.

이런 나의 속성을 잘 아는 아내는
프로그램의 내용이 가슴 아프거나
감격적인 순간에 이르면
TV를 보지 않고 내 눈을 들여다 보기 일쑤였지요.

이렇듯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기쁨과 슬픔을 인지하는 감성은 있게 마련인데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올해 초처럼 기쁨과 슬픔의 그림자가
明暗처럼 교차했던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연초 저의 승진으로 잠시 기쁨에 들떴던 우리 가족은
아내의 건강 악화로 인하여
상당한 심적 부담 속에 빠져 들었으며
병원에서 수술 할것을 제의 받고 입원하기까지
한달쯤의 시간동안은
수년 전에 한번 비슷한 수술을 겪었고
같은 아픔이 재발하면 癌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아내에게 있어선
이로 인한 중압감이 너무나 큰 무게로 다가 왔을 것입니다.

착하고 순박하게 오직 가족만을 위해 고생하며 살아 온 아내가
마치 마지막을 준비하듯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차곡차곡 애들의 옷 등과 옷장을 정리 하는가 하면
살림 도구들을 하나하나 청소하며 딸 아이에게
지금껏 하지 않던 살림살이에 대한 세세한 설명을
자상하게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 어쩌면 저건 아내만이 느낄 수 있는
죽음에의 어떤 준비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 같은 것을..

우리 가족 어느 누구도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지금껏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닥쳐 올 最惡의 상황에 대해서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 해 보는 기회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아내와 결혼한 뒤 이십여년의 세월을
나의 주관을 앞 세우고
아내를 배려하지 못하고 살아 온 나였기에
자괴감이 더 컸던 나는
아내의 수술이 어떤 결과로 돌아 올지라도
그것은 나에게 짊어 지워진 삶의 멍애로
받아 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였고
최대한의 배려를 통해 아내가 마음 쓰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었지요.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던
한달간의 시간이 흐른 뒤
두려운 마음으로 입원을 하여
수술 준비를 위한 각종 검사가 진행되었고
마지막 검사 과정에서
수술을 필요로 했던 환부가 사라져버려
꼭 수술을 할만큼 重症이 아니라는 진단에 따라
퇴원하라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활짝 핀 얼굴로 입원실로 돌아오는 아내의 얼굴은
살았구나 하는 안도와 희열이 뒤얽힌
그런 표정이였습니다.

병원 문을 나서며 기쁨에 겨워
큰 소리로 웃는 아내를 보면서
앞으로 정말 아내를 위해주고 사랑하며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이렇듯 기쁨과 슬픔은 종이의 앞뒷면처럼
너무도 우리들의 가까이에
항상 함께하고 있음을 직접 겪으면서
어쩌면 삶에 드리우는 어두운 슬픔의 그림자도
그것을 지우려는 진심 어린 노력과
사랑과 믿음이 한데 모여 하나의 합심으로 이어졌을 때
어려운 시간이 지나가고 보면
아름다운 한편의 사랑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조그만 생각을 하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