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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지금 냉전 중

솔뫼정원 2006. 2. 22. 22:02

 

                                             [무주의 보름 달]

 

 

[2003.1.29]


大寒이 지나고도 한 주일이 지났는데
그래도 겨울의 한 가운데 위치한 1월이라선지
어제 저녁부터 영하 10도를 하회하는 맹추위가 찾아 왔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처럼 지금 나와 딸 수정이 사이에는
냉전에 가까운 상당한 수준의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대학생이 된 후 방학 때를 이용하여 미국과 태국을 다녀 온 뒤로
해외에 대한 동경이 싹 텄음인지 방학 때마다
해외 여행을 보내 달라고 조르던 수정이가
지난 몇주 동안 계획해 오던 중국 여행이 무산되자
여행 목표지를 태국으로 다시 잡고 지난주 내내
여행계획을 짜느라고 부산을 떨어 왔었는데

지난 해부터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가 지난 주말
지금껏 치료차 다니던 산부인과 의원으로부터
대학병원이나 큰 병원에 가 진단을 받아보고
아마도 수술을 해야 될 것 같다는 권유를 받고
울먹이며 전화를 해 왔던터라
토요일에 대전으로 출발하기 전에 앞서 나는 아예 월요일 하루를
휴가를 내고 대전으로 내려 갔었다.

자라면서 따뜻한 부모님의 사랑다운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자란 아내는
딸 아이에게 몸이 아프다는 내색도 하지 않았기에
내가 집에 도착할 즈음에 전화해 보니 마음이 들 뜬 수정이는
친구와 함께 해외 여행 준비를 위한 쇼핑을 가고 없었다.
제 엄마가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아픈데
옆에서 위로해 주지는 못하고
해외 여행을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는 딸 아이에게 열이 받친 나는
엄마가 그런 지경인데 빨리 집으로 돌아 오라고 호통을 쳤고
녀석은 한참 후에 잔뜩 주눅이 들어 집으로 들어 왔지만
나는 더 이상 야단치지도 않고 그저 못본체 하고 무시해 버렸다.

평소 끔찍이도 생각해 주던 아빠의 무관심에도 기분이 상했겠지만
몸이 아프면서도 아무런 내색이 없었던 엄마에게
많이 섭섭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토요일 밤과 일요일 하루를 딸 아이는 엄마와 아빠에게
일언반구의 대화도 없이 지냈다.
월요일엔 여행을 위한 계약금을 지불 해야 할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한 시간일까를 생각해 보며
나는 이 애가 어떻게 처신해 갈 것인가
지켜 보기로 마음 먹고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월요일 오후 충남대학병원에 가서
여러가지 검사를 받고 돌아 온 우리 부부 앞을 지나
해약을 해야 한다며 울면서 집을 나서는 아이에게
그깢 여행이 엄마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거냐며 나무랬는데
나름대로 잔뜩 기대에 차서 세웠던 여행계획이 물거품처럼 스러지는
아이의 아픈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었나보다.

웃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이튿날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 왔지만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쓰려 오는 것을 보면
내가 너무나도 딸 아이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지금 이순간 딸 아이와 나는
'목하 냉전중'.......